존 록펠러는 1870년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을 공동 창업, 10여년 만에 미국 석유 산업의
95%를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철도 수송망을 장악, 경쟁 기업에 차별적 운송 요금을 적용하면서 경쟁 업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합병·제휴하는 등의 방법으로 미국 내 석유 산업을 장악했다. 저가 공세로 경쟁사를 차례차례 무너뜨리는 등 온갖 편법과 불법을 서슴지 않아 그의 재산에는 항상 '더러운 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원한을 산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는 항상 침대 곁에 총을 두고 잤다고 전해진다. 결국 미국 정부는
1911년 독점금지법(Anti-trust
act)을 만들어
'스탠더드 오일'을 34개사로 쪼갰다. 그 결과 지금의 엑손모빌, 셰브런 같은 굴지의 석유 기업이 생겨났다.
하지만 현재 존 록펠러는 '악덕 기업가'보다는 '위대한 자선사업가'로 회자된다. 막대한 기부를 하면서 무자비한 자본가라는 오명(汚名)을 씻었다. 그가 살아서 기부한 돈은 5억3000만달러로, 미국 GDP에서 록펠러 재산이 차지했던 비중을 감안하면 현재 가치로 1280억달러(약145조원)에 달한다.
1913년 당시
5000만달러를 기부하여 세계 최대 재단인 록펠러 재단(The Rockefeller Foundation)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록펠러 의학연구소, 시카고 대학,
록펠러 센터 등에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쏟아부었다. 뉴욕 중심가 알짜배기 땅의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링컨센터 역시 록펠러 가문의 후원으로 세워졌고, 유엔본부 땅도 록펠러 가문이 기증했다.
그 이유는 55세에 록펠러는 스트레스성 소화불량 및 우울증 증상을 보였는데 그동안 돈을 모으는데 몰입하여 누적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게 된다. 이 때, 록펠러는 프레드릭 테일러 게이츠라는 교회 목사에게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지요.' 라는 말을 듣고,
남은 1년 동안, 모은 재산을 의미 있게 쓰고 죽자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가는 곳마다 고아원을 세우고, 도서관을 세우고, 연약한 자를 돕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