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에서 들은 양심의 소리
참치 원양 어선의 전재용(45)선장은 11985년 11월 14일 1 년간의 조업을 마치고 광명 87호를 몰고 그동안 잡은 참치 2만여 마리를 싣고 말라카 해협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제 목적지인 부산항까지는 열흘길이었습니다.
태풍이 불지 않았지만 파도는 매우 거세었습니다. 항로를 바라보던 전 선장의 눈에 조그만 난파선 하나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배 안에서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구해 달라!” 고 아우성 치고 있었습니다. 직관적으로 베트남의 보트 피플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배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보트 피플을 만나더라도 관여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슴 속에서는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지나친다면 과연 내가 제대로 된 인간인가?’양심이 소리쳤습니다. 전 선장은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하고는 "만약 저기 죽어가는 사람들이 내 부모형제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간부들은 "돌아가서 저 사람들을 구합시다" 하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광명호는 30여분 뒤 난파선에게 돌아갔습니다. 그 좁은 배 안에 무려 96 명이나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흘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했고 배는 기관이었습니다. 그들을 보고도 그냥 스쳐지나간 '큰 배'가 그 날만 25 척이었다 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본사는 난민들을 인근 무인도에 하선시키라고 명령했지만 전 선장은 "나는 결코 이 사람들을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고 전했습니다. 난민 96명의 대표는 월남군 통역 장교 출신인 피터 누엔(41)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산에 도착하기까지 열흘 동안 전 선장에게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노인들을 위해 자신의 선장실을 내어주었고 먹을 것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난민들에게 배에는 냉동 참치가 가득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 한 일, 베트남에 두고 온 가족을 걱정하며 울적해 하는 난민들을 다독이며 격려하던 일들이 그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피터 누엔은 부산에 도착해 임시 난민 수용소에 들어간 후로는 전 선장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회사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전 선장과 선원 전원이 해고되었기 때문입니다. 전 선장과 간부들은 적성국가의 난민을 구출했다는 이유로 당국에 불려가서 숱한 조사까지 받았습니다. 선원들은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전 선장은 고향인 통영으로 돌아가서 멍게양식업을 시작했습니다. 피터 누엔은 1년 반 뒤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사가 되었고 베트남에 있던 가족도 데려와 생활이 안정되자 전 선장을 찾으려 한인사회에 드나들면서 전 선장을 수소문하기를 무려 17년, 마침내 통영에 살고 있는 전 선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04년 8월 8일 이들은 LA공항에서 19년 만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재회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베트남인은 물론 한국인과 미국인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전 선장의 이야기는 피터 누엔의 자서전인 Ocean Heart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전 선장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며 겸손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는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사람을 버리라'는 회사의 지시와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 사이에서 번민하다 양심의 소리를 택했습니다. 그는 쫓겨나 고생했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의 삶을 승리한 삶이라 평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