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2-27 04:19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토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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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광수
조회 : 263  

우리는 하나님이 살고 계신 곳을 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더 확실히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 당신과 나 같은 이들에게 다시금 들려오는 음성이 있다. “네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묻지 않으마.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너는 정말 나를 아느냐? 너는 정말 나를 원하느냐?”나는 내가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사역을 아주 성공적으로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나는 미국에서 크다고 꼽히는 교회들에서 말씀을 전했고, 국제 전도 사역도 했다. 러시아에 방문해 많은 교회의 개척을 거들기도 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가을의 일요일 아침에 있었던 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 사역의 모든 업적과 공로는 그 사건으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것은 내 오랜 친구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다. 텍사스 휴스턴에서 목회하고 있던 그는 자기 교회에 와 설교해 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왠지 올 것이 왔다는 기분이었다. 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하나님이 주실 그 뭔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집안은 성령 충만한 집안으로 4대째 기독교를 믿어 왔고 3대째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교회에 신물이 났었다! 나는 우리가 그토록 매주 예배에 끌어들이려 하는 대다수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이 오지 않는 것도 교회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사람이 교회에 진절머리가 났을지라도, 그들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 뭔가가 더 필요했다. 나는 하나님을 아주 아주 가깝게 만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어쨌든 그 주일 아침에 나는 텍사스의 친구 교회에서 설교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 주 수요일, 친구 목사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토미, 자네와 나는 오래된 친구일세, 그리고 여태까지 한 사람 두 주 연달아 주일 설교에 초청한 적은 없네. 하지만 자네가 이번 주일에도 여기 와 줄 수 있겠나?” 나는 수락했다. 하나님이 뭔가 하시려 한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둘째 주일은 더 뜨거웠다. 일요일 저녁 예배가 끝났는데 아무도 교회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월요일 저녁 기도회에 400명이 참석했다. 우리가 한 일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뿐이었다. 분명 뭔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 수요일 목사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토미, 이번 주 일요일에 다시 와 줄 수 있겠나?” 그의 말 너머로 성령의 소리가 들렸다. 그의 진짜 관심은 ‘내’가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와 내가 함께 원한 것은 하나님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좇는 동료였고 우리는 뜨겁게 그분을 추구하고 있었다. 

3주째 갔을 때였다. 호텔에 혼자 있는데 뭔가 묵직한 기름부음이 느껴졌다. 성령의 감싸심이었다. 나는 온몸을 떨며 울었다. 이튿날 아침 8시 30분 주일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갔다. 예배실로 들어가 맨 앞줄에 앉는데, 숨막힐 듯한 공기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이미 빽빽이 들어차 있음이 느껴졌다. 호흡이 곤란할 정도였다. 음악 팀이 찬양 인도를 계속하느라 애먹고 있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그들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 강렬하게 머물자 마침내 그들은 노래도 연주도 더 할 수 없었다. 그 분위기는 내게 이사야 6장 말씀을 생각나게 했다. 말씀에 보면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했다. 건물에 이미 성령이 충만할 대로 충만했고 하나님의 임재는 글자 그대로 실내에 꽉꽉 메워져 있었다. 실내는 여기저기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뿐이었다. 친구 목사가 예배를 이어받을 것을 말했지만 나는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고귀한 임재를 방해하여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인간들은 어느 정도까지만 성령께 통제권을 내드린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래왔던가. 일반적으로 우리는, 상황이 내 안전지대와 통제를 조금만 벗어나면 당장 끼어 들어 칼을 휘두른다. “역대하 7장 14절 말씀을 읽어야 할 것 같네. 주님이 주신 말씀이야.” 친구 목사는 말했다. 나는 눈물이 범벅이 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 목사는 연단 중앙에 있는 투명 강대상 앞에 서서 성경을 펴고 역대하 7장 14절의 준엄한 말씀을 차분하게 읽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7:14). 그 순간 건물 안에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렸다. 목사는 글자 그대로 위로 들어올려졌다가 3미터쯤 뒤로 쿵 나가떨어졌다. 목사가 뒤로 나자빠지는 사이 강대상은 앞으로 넘어졌다. 바닥에 닿는 순간 강대상은 이미 두 조각이 나 있었다. 나는 즉시 마이크 앞으로 나가 말했다. “하나님이 지금 이곳에 들어오셨습니다. 목사님은 괜찮습니다. 곧 괜찮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2시간 반이 지나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그때도 안내자들이 그를 들쳐업어야 했다. 살아 있다는 증거로 손만 가늘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님의 임재가 폭탄처럼 그곳에 내리쳤다. 사람들은 울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러분의 삶이 잘못됐다면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을 때입니다.”라고 말했다. 11시 예배 시간이 됐는데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엎드려 있었고, 음악 연주도 거의 없는데도 예배의 열기는 걷잡을 수 없이 더해 갔다. 남자들이 발레를 추었고 어린아이들도 회개하며 울부짖었다. 모두 그분의 임재 안에 있었다. 

그날 그곳에는 설교도 없었고 이렇다 할 찬송도 없었다. 그저 성령뿐이었다. 그들은 세례를 간절히 원했다. 우리는 주님 앞에 회개한 데 대한 물리적 증표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세례가 몇 시간이고 계속됐다. 끝없는 ‘주일 아침 예배’는 월요일 새벽 1시까지 계속됐다. 월요일 저녁 집회는 광고할 필요도 없었다. 다들 이미 알고 있었다. 솔직히, 광고를 하든 안 하든 집회는 열렸을 것이다. 사람들은 잠시 눈을 붙이거나 꼭 해야 할 일을 처리하러 집에 갔다가 ‘뭔가를 더 얻고 싶어서’ 돌아왔다. 그것은 사람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임재였다. 하나님은 교회의 음악이나 첨탑, 멋있는 건물 따위에 개의치 않으신다. 그분은 교회의 카펫에 감동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별로 문제삼지 않으신다. 그분이 문제삼으시는 것은 오직 하나, 다음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다. “너는 나를 원하느냐?” 교회에 와서 “우리는 주님만을 바랍니다.”하고 고백해 본 적이 언제인가? 혹 임하시지 않을까 두려워 하나님 바라는 것을 겁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려는 것들을 누리지 못한 채 나약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유를 알고 싶은가? 우리에게 임하셔서 능력 주실 하나님을 바라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내 힘으로 너무 많은 것을 하려 든다. 그것에 대해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다수 그리스도인과 지도자가 진정 선한 뜻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 훨씬 많이 있다. 

이후 연속 4-5주 동안 매일 밤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예배하고 기다리고 기도했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일이 다시 벌어졌다. 그때 퍼뜩 깨달은 것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서 이렇게 하고 싶으시다.” 수개월간 그분의 명백한 임재가 그곳에 머물렀다. 내가 아는 한 그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배고파하지 않는 곳, 굶주림이 없는 곳에 그분은 성령을 부으시지 않는다. 그분은 갈급한 자들을 찾으신다. 갈급함이란 기존 상태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런 일이 벌어지게 한 것은 무엇인가? 회개다! 회개는 우리의 마음을 닦고 곧게 한다. 회개는 우리 삶과 교회, 가정의 모든 낮은 곳을 높이고 모든 높은 곳을 깎는다. 회개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우리를 준비시킨다. 회개가 있기에 그분의 임재를 추구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고 고백한 것이 언제인가? 당신의 마음을 차지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회개의 길로 달려가 하나님을 구한 것이 도대체 언제인가? 나는 설교 잘하는 것,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추구했었다.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나는 부서졌다. 이제 나는 하나님을 좇는 자다. 그 밖의 다른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그의 저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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