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과
(빌립보서 1:19-26)
인생은 단 한번 뿐이요, 짧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살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의미있게 순간 순간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바울의 위대한 인생관을 대하게 됩니다. 당시 바울을 깊은 토굴 감방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 짓는 재판을 기다리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첫째,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를 존귀케하기 위하여 살았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뒤로 삶의 목적을 굳게 정하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재판관들과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서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믿고 섬기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감옥에서 나오기를 원치 아니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게 될 것입니다(고후 5:1). 주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와 입술의 말들을 낱낱이 기록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주님의 자비를 힘입어 악한 행위를 청산하지 않으면, 주님의 낯을 바로 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평생을 총각으로 살았지만 이성 관계에 있어서 깨끗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금전 문제에 있어서도 허물이 없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모든 일에 부끄럼없이 살았습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주님의 불꽃 같은 눈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죄를 주님께 자복하고 드러내면 주님은 우리 죄를 숨겨 주십니다. 그러나 계속 숨기면 주님은 공개하실 것입니다. 오직 바울의 삶의 목적은 오직 주님을 존귀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20절) 바울은 예수님만을 높이고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예수님만을 증거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먹을 양식이 없어도, 마실 물이 없어도, 혹은 공기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예수님 없이는 살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은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죽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살아 생전 주님과 동행하던 신자는 죽어 육신을 떠날 때에 오히려 더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신자가 육신을 떠난 때에는 그의 영혼이 주님과 더욱 밀접히 연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죽음과 가까운 옥중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놀란 것이 아니고 도리어 죽음 건너편의 복스러운 곳을 보고 기쁨과 행복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죽음이란 바울에게 있어서 현재의 상태를 떠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죽음은 결코 종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바울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있도록 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살아 생전 우리와 늘 함께하여 주시고, 우리가 훗날에 죽음에 이를 때까지라도 우리와 늘 동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