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8 23:21
예수의 무덤에 남겨진 세마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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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광수
조회 : 153  

예수의 얼굴과 시체를 감쌌던 오비에도 성당의 두건(聖手巾,Sudarium of Oviedo)과 토리노 聖衣(성의, Shroud of Turin)는 예수의 신적인 존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역사적 증거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이 두 성물이 실제 예수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대 첨단과학이 밝혀낸 사실만 보더라도 충분히 예수의 몸을 감쌌던 것이 확실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보니 삼베(세마포, 수의, 성의, 성수의로 불림)가 놓여 있었고,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두건(성수건)은, 그 삼베와 함께 높여 있지 않고, 한 곳에 따로 개켜 있었다...아직도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요한복음 20장 6~9절에 등장하는 이 현장 모습은 얼핏 지나쳐 읽을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수의(성의)와 수건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오비에도 성당에 보관된 두건(Sudarium of Oviedo)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이 지난해 3월 전문연구소에 의뢰, 혈액을 분석한 결과 모계DNA만이 추출돼 성령잉태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오래된 뼈에서 미토콘드리아DNA가 추출되고는 있지만, 피의 경우 사람이 사망한 지 몇 년만 지나도 산화돼 DNA를 추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2000년이 넘은 피에서 DNA를 추출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이다.

 

토리노 성의(Shroud of Turin)에는 예수의 부활 때 발생한 강력한 에너지로 인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예수의 형상이 3D로 투영돼 새겨져 있다. 예수의 부활을 입증하는 증거물인 것이다.

 

토리노 성의 자체가 기적인 것은 설명의 여지가 없다. 사람이 3일간 하얀 이불을 덮었다가 빠져나오면 어떻게 될까? 이불에 사람의 형상이 3D 입체로 투영돼 새겨질 확률은 0.00000%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수백억명의 사람이 명멸했는데 단 한 번도 그런 사례가 없었으니, 확률 자체를 계산할 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신이 수천년 후 예수의 역사적 존재가 논란이 될 것을 예상해 증거물로 미리 준비해둔 것처럼 오비에도 두건과 토리노 성의는 상호 진실성을 입증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토리노 성의와 오비에도 두건은 가짜라고 할 수 없는, 또한 현대 과학기술로 도저히 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숨겨져 있다.

 

두 성물에 적외선을 투시하면 예수의 모습이 나타난다. 물론 동일한 형상이다. 또 오른쪽 눈 자리에 로마시대 동전(렙톤)의 문양이 나타난다. 유대인들이 사람이 죽을 때 노자돈에 쓰라고 눈 위에 동전을 넣었는데, 신비하게도 두 성물을 컴퓨터로 분석한 결과 그 흔적이 고스란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또 예루살렘지역에서 자생하는 군델리아 투르네포르티(Gundelia trunefortii)라는 나무의 꽃가루가 양쪽에서 검출됐다.

 

두건과 성의에는 핏자국이 배어있는데 두 성물을 비교해보면 패턴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두 성물을 분석한 결과 혈액형도 AB형으로 같다.

 

고고학자, 과학자들은 이 두 성물이 100% 같은 곳에서 나왔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성당에 보관돼 있는 성의와 스페인 오비에도 성당에 안치돼 있는 두건은 예수가 사망, 부활한 후 각기 다른 경로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두건은 유태인들이 장사 지낼 때 얼굴을 싸매는데 사용했던 것이다.

 

학자들은 두건의 경우 예루살렘에 있다가 7세기 스페인으로 옮겨져 오비에도의 구주대성당에 보관돼왔다.

 

물론 두건에 대해 7세기 때 유럽에서 만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법의학자들이 꽃가루를 분석한 이후 가짜설은 설자리를 잃었다.

 

오비에도 두건과 토리노 성의 모두에서 꽃가루가 검출됐다. 이는 가시면류관을 씌울 때 나뭇가지에서 이마에 묻었던 것이 나중에 수의로 옮겨와 묻었을 것이라는 설과, 일반적으로 대기 중에는 그 지역에서 흩어져 날아다니는 꽃가루가 많은데, 꽃가루 일부가 이들 면에 묻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한 사람이 옷을 입고 여러 나라를 옮겨다니면 수십종의 꽃가루가 뭍게 되고 범죄수사 학자들이 꽃가루를 중요한 수사 단서로 활용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보면 후자가 더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법의학자들이 수의와 수건에서 검출된 꽃가루(화분)를 분석해보니 군델리아 투르네포르티 나무의 꽃가루로 확인됐다. 이 나무는 3~4월에 꽃이 피는 식물이다.

두 성물에서 <동전>의 문양이 확인된 것도 모두 진품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두건을 컴퓨터로 초정밀 측정한 결과 오른쪽 눈에 렙톤(로마시대 동전)의 문양이 나타났다. 이 렙톤은 본디오 빌라도가 29~32년 유통시킨 동전과 24가지 면에서 일치한다.

 

당시 렙톤은 지팡이 그림에 'IOU KAICAROC'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두건과 성의에 새겨진 글자를 확인하던 학자들이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IOU KAICAROC'가 아닌 'IOU CAICAROC'로 K자가 C자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981년 학자들은 영국의 박물관에서 C자가 들어가 있는 동전 2개를 발견했다. 당시 주로 K자가 들어간 렙톤이 발행됐지만, 무슨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C자가 들어있는 렙톤도 발행됐었던 것이다.

 

  

1898년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세쿤도 피아는 카톨릭교회의 요청으로 이탈리아 토리노의 성 세례요한(Saint Baptist Johon) 성당에 보관돼 온 수의를 촬영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이 수의에 있었던 흐릿한 이미지를 사진으로 인화했을 때 인화지에 예수의 형상이 나타났다. 상처입은 남자의 얼굴과 채찍질 당한 몸이 뚜렷하게 나타나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가 이를 공개하자 카톨릭계와 과학계는 엄청난 논란에 휘말렸다. 그는 사기꾼으로 몰렸고 우여곡절 끝에 40여년이 지난 1931년 다시 사진을 촬영하도록 허가받을 수 있었다.

 

세쿤도 피아는 1931년 두번째 사진을 찍었고 사진에 나타난 전신(全身)의 상처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매맞은 상황과 일치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 예루살렘 -> 콘스탄티노플 -> 릴레 -> 토리노

예수가 부활한 후 베드로가 무덤에서 갖고 나온 이 성의는 터키를 거쳐 944년 비잔틴 황제가 군대를 보내어 찾게 했고, 기사들이 콘스탄티노플로 갖고 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어 1204년 4차 십자군의 유럽 기사들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할 때 프랑스로 가져왔다.

 

1357년,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150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작은 시골 마을 이었던 릴레라는 곳의 조그만 통나무 교회당에서는 한 전시회가 열리게 되었다. 전시회를 개최한 사람은 쟌느 드 베르기라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백년 전쟁에 병사로 참가하였다가 그만 1356년 전사하였다. 그녀의 남편이름은 릴레 마을의 영주이며 기사였던 지오프레이 드 샤르니라는 사람이었다.

 

졸지에 미망인이 되어 생활이 어려워진 베르기 여사는 사람들의 관심도 불러일으키고 돈도 조금 기부받기 위해서 남편이 소유하고 있던 예수님의 세마포라고 알려진 이 수의를 공개한 것이다.

 

그 세마포에는 머리와 팔에 흘러내린 핏자국이 보였으며 옆구리와 손목과 발 등에도 얼룩진 핏자국과 채찍 맞은 흔적으로 추정되는 많은 점들이 보였다.

 

당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천여년 전에 십자가에 고난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이 세마포를 통하여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착각과 감격을 느끼게 되었다.

 

이 작은 마을은 온통 이 전시물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큰 소동이 벌어졌고 갑자기 유명해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베르기 여사에게 질문하였지만 그녀는 남편이 이미 사망하여 이 땅에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그것을 자기 남편이 소유하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그것이 분명 예수님의 세마포라고 알려져 오던 것이라고 밖에는 더는 설명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호기심에 놀란 당시 트로이의 카톨릭 주교였던 앙리는 이 전시를 그만두도록 명령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1389년 이 성의는 다시 한번 전시되었다. 그러자 앙리 주교의 후임이었던 아르시스 주교는 이것을 1355년 화가가 위조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교황에게 전시의 중단을 청원했다.

 

이렇게 해서 성의에 대한 관심은 조금 누구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교황 클레망 7세는 샤르니 일가와 절친하였으므로 이 문제에 대하여 위조품이라고 단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1400년, 샤르니의 손녀딸 마가릿에게 상속권이 넘어간 이 세마포는 한 교회에 보관되면서 매년 강가의 들판에서 전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얼마 후 이 성의는 샤르니의 손녀였던 마가릿에 의하여 당시의 세력가였던 사보이의 영주 루이 공작의 손에 넘겨졌다. 이 때부터 이 세마포는 다시 예수님을 쌓던 진품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됐다.

 

루이 공작은 이 세마포를 얻게 된 것을 기념하여 교회를 건축하고 그곳에 이 세마포를 보관했으나 1532년 화재 때 수의에 일부분이 불에 타게 되는 피해를 입었다. 1578녀 사보이 가문은 이태리 투린에 성(城)을 짓고 이 수의를 옮겨와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몸 체에는 수많은 작은 점들이 있었다. 이것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록 만들어진 플라그럼이라고 하는 로마 시대의 채찍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로마 시대의 채찍은 가죽 끈의 끝에 납이나 뼈로 만든 덩어리가 달려 있어서 때리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록 되어 있었다. 세마포에 새겨진 주인공은 바로 이런 고통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상처자국도 있지만, 상당수는 적외선 촬영을 했을 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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